개와 늑대의 시간 

2025.5.14. - 2025.5.24.
GoldenHandsFreinds Art
minalee solo exhibition



바라보는 얼굴

첫눈 쏟아지던 날도 작업실에 갔다. 새끼 두마리를 품은 늑대 그림 위에 눈 내리는 것을 그렸다. 습기를 머금은 첫눈은 온 세상을 흠뻑 채우고도 한참을 더 내렸다. 그림 속에는 그보다 가벼운 눈송이를 그려넣었다. 눈을 바라보는 늑대의 얼굴을 보며 나는 질문 하나를 떠올렸다. 배경을 칠하고 뒤로 물러나 그림을 살필 때도, 추위에 쪼그라든 나뭇잎을 보거나 틀어둔 난로에 발을 댔다 뗐다 하는 멍한 움직임 속에서도 떠오르는 질문이었다. 할머니는 그래서 도대체 어디로 간걸까? 여름날 네모 반듯한 비석에 사랑합니다, 라고 새겨진 글귀를 보았었는데. 답 없는 질문이 자꾸 생겨났다 사라졌다.

어른이 되어 오래된 아파트에서 일 년간 함께 살았던 기억들에 내가 냈던 짜증, 할머니가 부렸던 고집, 맛있게 먹었던 외식, 여행 채비하며 설레하던 할머니 모습 같은 것들이 여전히 나는 가지고 있는데 정작 같이 있었던 할머니는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하고 이상했다.

할머니가 온 세상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사실은 어디에도 없다는 느낌이 머릿 속 골목 여기 저기에서 질문처럼 나타났다 사라졌다. 생겨나고 사라지는 질문과 함께 그림을 그렸다.

한겨울 작업실에 앉아 그 해 여름에 놀러가서 본 제주 바다와 물을 떠올렸다. 침입자를 경계하는 아기 복어와 바다 속에만 머물러 이상한 질감으로 변해버린 바위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바다에서 돌아온 다음날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장례식을 마치고 작업실에 돌아와 제주에서 본 바다를 그렸다.

바다와 할머니가 돌아가신 기억이 너무 가까이에 있어선지 물을 그릴 때마다 할머니를 생각했다. 그림 속 바다가 나만 알고 있는 바다인 것처럼 어딨는지 모르겠는 할머니도 나만 알고 있는 할머니였다. 제주에서 본 생생한 바다 속 풍경만큼 내 머릿 속에는 여전히 할머니가 있는데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것이 또 이상했다.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그림 속에는 다른 동물보다 개와 늑대를 여러번 그렸다. 현실에 드는 미시감이 이상해서 내가 가장 잘 알고 익숙하고 손에 익은 동물을 그렸다. 그래서인지 그림 한구석을 가만히 응시하는 그들의 얼굴에서 그들도 나와 같은 질문 하나를 떠올리는 것 같았다.

물을 경계로 닮았지만 다른 동물들이 서로를 쳐다본다. 물가를 응시하는 동물은 멍하니 뭔가를 바라보며 질문하는 나같고, 수면에 비치는 그림자는 나를 바라보는 할머니같았다. 때로는 그림 속 물과 땅의 경계가 뒤섞이고, 바라보는 시선에는 약간의 걱정과 슬픔에 사랑이 더해졌다.

낮에도 빛나지만 보이지 않는 별과 수면 위에 비치는 그림자와 얼굴을 담그면 시야 가득히 도망갔던 물고기 떼의 반짝임,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푸 불었던 숨에 터져나가는 새하얀 구름들 모두에 할머니가 있을거라고,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을 거라고 믿으며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들을 그렸다. 그림은 내 믿음과 바람의 결과물이었다.

수수께끼같은 질문 속에서 발견한 것은 할머니가 아주 오래 전에 준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뭉쳐지고 희미해지고 뒤섞이는 것들 속에 숨어 있는 사랑이 내게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질문을 하면 할수록 점점 선명해지는 조각을 손에 쥐고서 보고 싶은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다.

글 · 이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