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and Night
2022.10.19 - 10.29
GoldenHandsFreinds gallery
minalee solo exhibition
허투로 보내지 않는 하루
그림 그리는 시간을 제외하면, 동네를 산책하고, 강아지와 고양이를 돌보고,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는 게 전부다. 좋아하는 일이 업이 되었으니 일로, 취미로, 실컷 그림을 그린다. 그림책 더미도 만들고, 드로잉도 해보고, 썸네일도 만들고, 먹그림도 그리고. 그림책 작업과 아트웤을 자유롭게 오가며 본인의 시간표를 따라 하루를 지낸다. 열심으로 채워진 꾸준한 날들. 계획형 내향인 작가 이미나가 만드는 소소하고 충실한 작업이야기.
보통 오전 9시면 집 근처 작업실로 출근을 한다. 고양이 미미를 두 팔로 안아 들고 쓰다듬으며 행복한 20여 분을 보낸 뒤, 작업용 앞치마를 두르고 그림을 그린다. 12시엔 점심을 먹고, 눈구경하며 잠깐 산책을 다녀온 뒤 다시 의자에 앉아 또 그림을 그린다. 집중이 흐려지는 오후 서너 시즘엔 가까운 행궁동 단골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만 늦어도 다섯시 전엔 작업실로 돌아와 다시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6시엔 퇴근을 한다. 활동 반경이래야 작업실 근방이 전부다. 직장인의 하루와 별반 다르지 않은 하루의 스케줄. 이미나 작가의 매일은 그렇게 채워져 있다.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이 다소 시대를 역행하는 세련되지 못한 삶의 방식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노력충’이라는 말로 비하되기도 하는 오늘날, 스스로의 만족과 성취감을 위해 진심과 열심의 보람된 시간을 선택했다. 작업을 한 날엔 다이어리에 한자 지을 작作을 써두는데 이 글자가 많이 있으면 작업하며 잘 살아가고 있구나 안심도 되고, 시간을 알차게 쓴 것 같아 마음도 편안하단다. 때마다 조금씩 다르다지만, 대충 보아도 꽤 많은 날들이 크고 작은 ‘작’자로 채워져 있다. 이름 뒤에 작가란 단어를 달았으니 이 정도는 살아야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그 시간 동안 머릿속으로 상상도 해보고 어떤 장면이 좋을지 고민도 하고, 작게도 그려보고 크게도 그려보고, 재료도 바꿔가며 나은 것을 찾아간다. 대신 하루 그림 목표량을 정해두는 것은 그만하기로 했다. 강박만 더해질뿐 좋은 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신 별 생각 없이 그냥 그린다. 그림이 잘 될 때도 그리고, 그림이 안 될 때도 잠시 쉬었다 다시 그리고. 그렇게 흘러가는 매일에 색을 입힌다.
- 작업실 오며 본 동네 모습이 딱 작가님 그림책 [나의 동네] 같아 재밌었다.
: 어린시절 봤던 할아버지 동네같은 배경을 원했는데, 작업실 구하려 왔던 수원에서 그 답을 얻었다. 이 근방 골목을 다니며 낡은 주택도 스케치하고, 풍경도 담으며 준비했었으니 닮은 부분이 있을거다.
- 네 번째 그림책 [새의 모양]이 나왔던데. 이번 새 책은 느낌이 좀 다르더라.
: 원래는 아크릴과 유화로 작업하는 편인데 이번엔 유화로 그린 새의 그림이 무겁게 느껴지더라. 조금 다르게 작업해 봐야지 싶어 수채화를 선택했다. 수채화 작업에 대한 기억이 그닥 좋지 않았어서 좀 두렵기도 했고, 수채화는 종이도 비싼편이라 망설이다 시도해봤는데 맑고 투명한 느낌이 가볍고, 보드랍고, 반짝이는 작은 새의 모습에는 더 잘 맞았던 것 같다. 붉은색에 노란빛이 더해진 색감도 그렇고.
- 너무 열심히 하는거 아닌가? 그림책 한 권 만들어 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19년 첫 책을 시작으로 벌써 네 번째 책이다. 게다가 아트웤 작업도 하고, 여러 전시 일정들도 있고 간간히 강연도 있는걸로 아는데.
: 그림을 그리고 생각을 풀어내면서 힘을 얻는다. 안그릴 때 오히려 예민하고, 까칠해지고. 어느 날, 몰입해서 그림을 그리다 화장실에 가서 내 얼굴을 봤는데, 꼭 부처님 얼굴처럼 편안해 보이더라. 그림 그릴 때 내가 제일 편안하구나 느껴졌다. 붓으로 확확 몰아치듯 그리는 느낌도 좋고, 그 후에 드는 나른한 기분도 좋다. 딱히 취미랄 것도 없는 편이라... 시간이 많다. 그런데 늘 열심히 한다는 건 오해다. 게으를 때는 한 없이 게으르다. 한 70% 정도의 열심으로 살고 있지 싶다.
- 책 속 주인공도 그렇고 아트웤 작업도 그렇고 동물들과 다양한 식물이 주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 대학 다닐 때까지만 해도 동식물을 그려본 적이 없다. 그림 스타일도 지금과 완전 다르고. [나의 동네] 그림책 작업을 하면서 오래된 동네 곳곳에 사는 동물들을 처음 그리게 됐고 그림 연습을 하면서 본, 그 형태와 무심한 듯한 눈매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관찰하는 시간이 늘어나게 됐고, 그렇게 시간을 들여 더 자세히 살펴보니 그 속에 무궁무진한 형상들이 숨어 있는 게 보이더라. 탐구하며 점점 더 좋아졌는데, 식물은 형태로서 매력적인 대상이고,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은 곁에서 치대며 사는 존재인데, 어떤 날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완전히 소통 가능한 대상처럼 느껴지고 또 어느 날은 절대로 얘네를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야생적 미지의 존재처럼 느껴지는 점이 재미있다. 내게는 그려도 그려도 계속 그림을 이어가게 해주는 귀한 소재이다. 그러고 보니 남동생도 수의사인데, 우리 가족에게 동물을 사랑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도 같다.
- 특히 애정이 가는 동물이 있나?
: 그렇진 않은데 이번 골든핸즈프렌드 전시를 앞두고 작업을 할 때는 고양이 까미 생각이 많이 났다. 작업실에 있는 미미는 생각하는게 보이고 겁도 많은 아인데, 까미는 도대체가 알 수가 없는 아이였다. 강원도에서 풀어 키우던 고양이라 집 안팎을 자유롭게 다녔는데 사라져선 아무리 찾아도 없어 어디서 잘못됐나보다 체념하면 한 6개월 지나 불쑥 나타나기도 하고, 수원집으로 오고 나서도 3일 동안 사라졌다 돌아오기도 하고. 사고뭉치였는데 동시에 특이하고 신비로운 존재 그 자체였다. 죽고나선 한동안 안그렸는데 왜인지 까미 생각이 계속 나더라.
- 작품 설명을 좀 해준다면?
: 최근 들어 너무 비슷한 소재만 그리는게 아닌가 하는 고민이 있었다. 고여지는 게 아닐까 걱정도 되고. 아이덴티티와 정체됨 사이의 고민이랄까... 그런데 고민해봤자더라. 꽂힐 때 그리자 싶어서 좋아하는 것 더 그려보기로 했다. 조금 변화가 있다면 전엔 꾸덕꾸덕하게 올리고, 채우는, 가득 찼을 때의 느낌을 좋아했다면 요즘엔 덜어냈을 때의 느낌도 좋아졌다는거다. 사족을 없앤 본질의 형태가 지닌 단순함도 표현해 보고 싶다. 그 변화를 고스란히 볼 수 있는 게 사과 그림이다.
- 더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나?
: 큰 작품을 그려보고 싶다. 요즘은 안그런데 그림이 팔리기 시작한 초반에는 이 그림이 팔릴 것 같다, 안팔릴 것 같다에 사로잡힐 때가 있었다. 특히 큰 그림은 재료는 많이 들고, 보관도 쉽지 않은데 판매도 소품에 비해 잘 되지 않으니까, 비용도 부담스럽고, 이것저것 따지다 못하곤 했다. 이번에 4미터 되는 긴 롤지에 그림을 그려 봤는데 큰 화폭에 담는 그림 이야기가 새롭고 재미있었다. 보관 때문이라면 천에 작업해봐도 좋을 것 같고... 고민 더 해보고 좋은 방법을 찾아 큰 작업을 진행해 보려한다.
- 다양한 활동으로 바쁜 요즘인데 마음은 어떤지.
: 재료비는 계속 나가는데 일 년에 백 만원도 못 벌던 20대를 보냈다. 그 때를 부모님 덕으로 버티고 나서 그런지 최근 들어 나아진 모든 변화들이 신기하고 감사하다. 그림이 팔리는 것도 그렇고, 라이브 드로잉을 보러 와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도 그렇고. 내가 그린 그림이 네 권의 그림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는 것도 그렇고... 혼자 있는 것도 좋아하지만 사람만나 이야기하고, 좋아해 주시는 분들을 가까이 만나는 것도 필요하다 생각해서 노력 중에 있다. 책 홍보 하느라 행사도 해보고, 외부 라방도 해봤는데 부족하다 느껴지더라. 다음 번에는 더 잘 준비하고 내공 쌓아서 만나뵈어야지 생각하고 있다.
Lee Mina’s thought-out daily routine
Lee Mina paints but in other times she take walks in her neighborhood, looks after her dog and cat, and takes coffee breaks at cafes. Her job ended up being what she enjoyed so she paints as much as she wishes. Painting as an artist is both her job and her hobby. She makes dummies for her picture books, makes thumbnail sketches, and draws with chinese ink. Lee Mina spends her days intertwining from illustrations for picture books and paintings. Her days are pretty much fixed and consistent. This is a trivial story of Lee Mina, an artist who seem somewhat strategic and introversive.
Lee Mina goes to work at her studio around 9am in the morning. She starts her day by hugging and patting her cat Mimi happily for about 20 minutes. Afterwards, she puts her work apron on and starts painting. She takes lunch break at noon and takes a short walk afterwards. Returning from her lunch break, she gets back to her paintings for the afternoon. Around 3-4pm, when she starts loosing her concentration, she visits a cafe at Haenggun-dong where she is a regular and orders a cup of coffee. Sometimes she gets involved in a conversation over her cup of coffee but normally she heads back to her studio before 5pm and finishes off her paintings for the day. She normally leaves her studio at around 6pm. It seems like her days are set around the boundaries of Suwon, where her studio is at. Her daily routine is pretty much the same as any salary man. Her approach of working as an artist may not seem too attractive in our times. Some say she is workaholic. But this way of approaching her work satisfies her and it seems to give her a sense of accomplishment as an artist. She writes the letter ‘作’(which means ‘to make something’ in chinese) in her diary on the days she paints in her studio. This marking is meaningful and comforting to the artist knowing her days are fulfilled as an artist. It varies from time to time but pages of her diary are filled with various sizes of the letter ‘作’. The artist feel she must live up to certain standards as an artist. During her working hours, she imagines various images and thinks out different sceneries in her mind. She makes drawings varying its size from small to big, and from many variations she searches for the best that suits the picture. But what she doesn’t do is to set the amount of work that needs to bee done everyday. She refuses to pressure herself with certain amount of work that needs to be done. She lets things flow when she works. When things go well she paints and when things don’t she takes a break. When she paints she lets things go naturally and searches for the right mood that suits day by day,
- Images from your picture book “My Village” reminds me of the streets here near your studio. It’s interesting.
: I had a recollection of where my grandfather use to live as a child. When I came to Suwon, it seemed very similar to the neighborhood from my childhood memories. I made sketches from the streets, old housings, and its sceneries so I guess it’s natural to have a resemblance.
- Your 4th publication “The shape of A Bird” seems to be a bit different.
: I usually work with oil and acrylics. But it felt a bit heavy. I wanted to work a bit different so I chose watercolor as my medium. Watercolor paper is quite expensive and I was a bit cautious at first because I had a bad experience with the medium in the past. But it all seemed to work out right. Watercolor portrayed the bird nicely being transparent. It suited the lightness, the softness, and the twinkle of the bird. The color of the yellow within the red worked just right for me.
- Aren’t you working too hard? Since your first publication in 2019, it’s already your fourth. I know you also paint, exhibit, and hold lectures.
: Painting is a mean of portraying my thoughts, and it seems like this strenghtens me. I am rather more edgy and haggard when I don’t paint. One day I saw a reflection of myself in the mirror after I had concentrated on a painting for some time, and realized I looked like the Buddha with no worries. I am at ease when I paint. I enjoy the strenght of the strokes and I like the feeling of languidness afterwards. I don’t have a particular hobby. I seem to have lots of time, But it is a misunderstanding to say I am always occupied to my work. I am sometimes very lazy. I say I give about 70% to my work. I feel that is good enough.
- Don’t you have something you want to do?
: This person I had met the other day had asked me what my hobby was and I didn’t have much to say. He seemed to be a biker and he seemed to have many others. I felt a bit odd. The conversation gave me a reality hit. I thought deeply afterwards and realized I too wanted to do many things. I want to go swimming and I want to travel. I want to go to the sea and collect images for drawings. I want to buy various art supplies... I hope to experiment paper for oil paint and I also want to expand in scale.
- Back talking about your work?
: I’m always like this. I had started ceramics as a hobby but it ended up being part of my art work. I had made a tiger, a fox, a leopard, a cheetah, a lion, an owl, and etc.
- Animals and plants seem to be subjects to both your picture books and paintings. Is there a special reason?
: I had never drawn animals nor plants even in my college days. The style of working at the time was totally different from now. I started drawing animals from old neighborhoods when working on my first picture book “My Village”. I got interested in the form of animals and the look of its eyes. I ended up observing them more deeply and looked closer and closer, and found endless possibilities hidden that’s underneath the faces. Plants are attractive in its forms as well. Dogs and cats are pets that live with us. They interest me because sometimes they seem tamed and seem capable of communication but sometimes they seem wild like a beast. It’s a subject matter that leads me from one to the next. My brother is a veterinarian. I think our love toward animals sort of run in the family.
- Is there an animal you favor?
: Nothing comes to mind in particular. But getting ready for the exhibition at GHF, I thought of my cat Ccami a lot. Mimi at my studio is somewhat expectable and a bit timid. But Ccami was different. He was a cat we used to look after in the woods at Gangwon-do province. He used to come and go. One time he disappeared for 6 months. At the time we all thought something went wrong. After we moved to Suwon he also disappeared for 3 days. He was quite a trouble maker but he seemed unique and mysterious. I didn’t draw him for sometime after he had died, but he was always in my memories.
- Can you tell me more about your work?
: I recently felt I had been working too much with similar subject matters. It bothered me because I didn’t want to be caught up. I am always concerned between identity and repetition. But it didn’t take long for me to realize that I should just paint what I like. My paintings used to be thicker in its texture and filled packed with images. But now I prefer things taken out. I hope to express the simplicity and fundamentalness of things. The apple painting is a good example.
- What are your plans?
: I hope to expand in scale. I want to paint larger paintings. I was caught up by the thought of my work being sold or not in the beginning. Large works are more expensive in its use of materials and more difficult to store when its not sold. It’s more likely to be unsold than the smaller. I wasn’t able to paint larger because I was always making excuses. I had painted recently on rolled paper that was 4 meters long. This experience of painting on a larger scale was new to me and it excited me. I think working on rolled paper or canvas may solve the storage problem. It’s a problem I have to think out and find a solution that fits me.
- You seem busy with many schedules now. How does this feel?
: In my twenties, I kept spending money on art supplies but earned less than ₩1,000,000 within a year. I was helped by my parents. I am very thankful for the recent changes now. I am grateful for my paintings being sold and people willing to watch me at live drawing sessions. I am also grateful for my 4 picture books being published. I like spending time alone by myself but I realize the importance of meeting others who appreciate my work. I held public promotions for my picture books and scheduled live radio sessions. But it didn’t quite satisfy me. Hopefully, my accumulating experiences will help me develop and come up with something better in the future when meeting with my audiences.
<그림의 낮과 밤> 2022. 3. ~ 2022. 9.
전시 일정이 잡히고 처음에는 밝고 어두운 그림을 구분지어 그렸다. 밝은 그림은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았고, 어두운 그림은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 어느 기간 동안 밝고 아기자기한 그림만을 그렸는데 속이 답답했다. 이런 마음이 미심쩍었다. 이런 의중을 사장님들과 이야기했다. (나는 골든핸즈프렌즈 대표님 두 분을 사장님이라고 부른다.)
다음에 우리가 또 만났을 때 선영 사장님이 ‘저번에 작가님이 그러셨잖아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려고 한다고. 근데요, 작가님. 그냥 작가님이 그리고 싶은 걸 그리세요.’ 라고 했다. 차분히 말해주시는 그 순간 속이 시원해졌다. 그 날 이후로 밝은 그림을 그리기도 했지만 그런 분위기가 사람들에게 더 수월하게 말 걸 수 있을 거라는 추측은 버렸다.
그림책 작업을 하며 그림을 그렸다. 여러 동물을 그리려고 했는데 이상하게도 고양이와 늑대가 자꾸 등장했다. 그리는 내내 올 초에 죽은 강원도 고양이가 생각났다. 아빠는 강원도에서 펜션을 하며 풍산개와 고양이를 한마리씩 키웠다. 산안개 낀 산 아래서 산신령처럼 앉아있던 고양이. 어디선가 나타난 수탉을 보고도 늘어지게 하품하던 고양이. 내가 본 고양이 중 제일 컸고 제일 의중을 모르겠던 고양이. 여름이면 초록빛에 겨울이면 하얀 눈에 파묻혀 있던 고양이. 고양이를 그리는 내내 그림 속 고양이의 일부분은 그 고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주변이 하얗고 눈 두덩이 까만 고양이들을 배트맨, 혹은 턱시도라고 부르는데 그림 속 고양이들은 대부분 그 무늬였다. 죽은 고양이의 행복한 시절을 떠올리며 그렸다. 그렇지만 그리는 내내 고양이가 죽어버린 것도 자꾸 생각났다.
고양이 옆의 늑대는 몇 년 전에 죽은 하얀 풍산개를 떠올리며 그렸다. 고양이가 그 개를 좋아했다. 아기 때부터 함께 살아 안락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죽은 두 동물들을 떠올리며 늑대와 고양이를 그렸다. 늑대는 그 개를 닮았고, 고양이는 그 고양이를 닮았다. 나는 그들이 살았던 때를 떠올리며 그렸지만 그릴수록 그들이 죽었다는 사실도 떠올랐다.
둘이 재회했을지 아니면 죽고 나서 그냥 모두 사라져버렸는지 궁금했다. 우리가 털을 만지고 동물의 쿰쿰한 냄새를 맡고 서로 바라보던 기억들도 떠올랐다. 생으로 가득찬 것을 그리면서도 죽은 고양이가 자꾸 떠오르는 것이 이상했다. 늑대는 평소에 그리던 늑대보다 과장된 표정을 지었다. 죽은 개가 생전에 보여줬던 애정과 화와 평온과 늙어가는 고됨을 떠올리며 그렸다.
살아있는 것과 죽음이 너무 가까운 곳에 붙어있었다. 낮과 밤처럼. 평행선처럼 마주보고 이어져 있다. 그리는 내내 다른 것들이 자꾸 상충했다. 그림은 발랄한데 그리다보면 가끔 슬펐다.
올 초부터 그림 속 형태에 대한 고민이 더 많아졌다. 그 전에는 좋아하는 동물, 식물 등의 소재가 원동력이었는데 어느 순간 도돌이표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재보다 그림 속 형상을 더 단순한 도형의 모양으로 풀어봤다. 동그라미, 네모, 모양과 선이 돋보이게 그려봤다. 그 전에는 소재의 기분을 드러내려 했다면 이번에는 색, 선, 도형같은 조형이 주로 보였으면 했다. 그러다보니 대상이 어떤 기분일지 잘 가늠이 안됐다. 그래서 이렇게도 그리고 저렇게도 그렸다. 한가지 방향으로 그리다보면 다른 것도 하고 싶은 마음이 슬금 고갤 들었다. 한가지로 귀결되지 않았다.
연초에 개인전을 계획하면서 세웠던 원대한 계획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원래 나는 하나의 결로 통일된 전시를 하고 싶었다. 주제도, 담긴 의미도, 대상도, 표현기법이나 드러낸 방식도. 처음에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한 그림을 그렸다가 흥미가 점점 떨어져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렸다. 한가지 목소리를 내려고 하니 다른 목소리도 따라왔다. 타인의 시선을 생각하니 내가 그리고 싶은 것들이 목소리를 키웠고, 산 동물을 그리며 죽은 동물을 떠올렸다. 소재를 닮게 그리는 표현방식이 지루해져 형태를 단순하게 그려냈다. 그리다보니 두가지 요소가 번갈아 떠올랐다. 생과 죽음, 타인의 시선과 나의 시선, 다른 표현방식. 동그란 얼굴의 고양이와 뾰족한 주둥이의 늑대.
모두 변명처럼 느껴진다. 그림으로 이야기한다면 그림에서 끝내면 될 것을. 자꾸 이건 이런 마음으로, 이건 이런 생각으로 그렸다는 말을 덧붙이는 것을 보면 아마 이번 전시에 걸 그림들이 처음 계획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는 중에 제멋대로 갈라지는 방향을 한 결로 모으는 것이 어려워 그림의 낮과 밤이라는 제목을 지었다. 나는 그냥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고 싶은 순간에 그릴 때 맑아졌다. 지금 생각해보니 사장님이 그랬다. 작가님이 그리고 싶은 걸 그리세요. 전시는 결국 처음 우리의 의도대로 잘 흘러온 것일까. 이것 저것 재보면서 떠오른 것들을 손에 쥐고, 이것저것 해보다가, 결국 다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렸습니다.